당시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의 첫 충격적인 패배, 마침내 소련의 반격..

오늘은 바로 세계 제2차 대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이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났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배경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독소 전쟁의 시작)

독일군은 빠르게 소련 영토 깊숙이 진격하여 넓은 땅을 장악하고,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포함해 여러 지역에서 소련군을 격파해 나갔다.

독일 최고 사령부는 점령한 영토를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한 자원과 인력의 원천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고, 그들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스탈린그라드였다.

 

스탈린그라드는 볼가 강둑에 위치한 주요 산업 중심지였다.

이 지역은 당시 소련의 지도자인 조셉 스탈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기 때문에 소련의 스탈린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큰 상징적인 가치가 있었다.

볼가 강에 위치한 이 도시는 탱크, 비행기, 그리고 군수품을 포함한 군사 장비를 생산하는 수많은 공장들포진해 있어서 소련 전역에서 군대와 물자를 이동시키는 중요한 교통 중심지였다.

 

독일군은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독일은 30만 명 이상의 군인으로 구성된 6개 군단을 배치했고, 소련은 62민 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도시를 방어했으나 사실상 실제 병력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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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하는 독일군 (스탈린그라드 전투)

 

 전투 과정, 일명 '생쥐 전쟁'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7월 17일 독일군의 포격으로 시작되다.

독일군은 빠른 전격전을 펼치며 곧 도시 외곽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하지만 소련은 저항은 의외로 집요하고도 격렬했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파괴된 도시 요소 요소에 생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지독한 시가전 양상이 펼쳐지게 되어 이를 두고 '생쥐 전쟁'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마치 쥐구멍 같은 요소마다 모두 전쟁터가 되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처럼 전투가 계속 지연되면서 독일군은 결국 병참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독일군은 군수 보급품을 지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병사들은 매서운 겨울의 극심한 추위를 포함한 혹독한 환경을 견뎌야만 했다.

한편 소련군의 증원군이 도시에 도착하여 방어군의 대열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42년 11월, 소련은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독일군을 포위하여 도시에 가둔 채 보급선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군 진영은 탈영병이 증가하시 시작했고, 보급이 끊겨 곧 식량, 물, 탄약의 심각한 부족에 직면했다.

양측의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으며, 독일군은 끈질기게 버텼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키기 힘든 상태로 계속 악화되었다.

 

1943년 1월, 소련군은 도시의 건물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고, 독일군이 이동하고 방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폐허의 미로를 만들었다.

1943년 2월 독일군은 심각한 곤경에 처했다. 소련군 최후의 공격이 개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2월 2일 독일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항복했고, 9만명 이상의 독일군이 포로로 잡혔으며, 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련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백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결과

 

대표적인 시가전 양상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에게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 제2차 대전 흐름의 판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인들에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는 탱크, 비행기, 그리고 포병을 포함한 군대와 장비의 상당 부분을 잃고, 독일군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큰 패배를 당한 것으로 기록되는 심대한 타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독일 최고 사령부의 자신감을 흔들었고, 전 군의 사기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독일군은 수세에 몰렸고 유럽 동부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소련 역시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승리는 독소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것은 소련군이 대규모 전투에서 독일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한 최초의 사건이었고, 소련에게 전략적 이점 확보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투는 히틀러의 지도력과 군 지휘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으며, 독일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서부 전선 연합군 반격의 서막을 알리는 단초를 제공하며 세계 제2차 대전의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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