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팬들이라면,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경험한 세대라면 히딩크와 함께 했던 이른바 '2002 영광의 세대'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가득할 것이다.
(필자 역시 인생의 역대급 추억이 된 가슴 벅찼던 당시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게다가 히딩크 사단의 일원으로서 히딩크를 보좌하고 그의 유산을 간직했던 박항서 감독이 지금 베트남에서 이른바 '쌀딩크'라는 애칭으로 불릴만큼 베트남 축구의 황금 세대를 구현하면서 동남아 축구의 돌풍을 예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아시아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그 히딩크가 지금 중국에 있다.
그리고 "뭘 해도 안 된다"는 중국 축구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소리없이 조심스럽게 지펴나가고 있는 중이다.
히딩크가 부임하기 이전까지 중국에서는 '중국의 히딩크'로 기대되던 명장 리피 감독이 정작 중국 대표팀을 맡은 뒤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도중 하차하게 됨에 따라 U-23 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가 아예 중국 대표팀 감독을 겸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운재, 최진철, 최진한 등..
국내 지도자급 인사들이 히딩크를 보좌할 코치진으로 부임하게 될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히딩크 감독 뿐만 아니라 한국의 황금세대들이 경험했던 히딩크의 유산을 모두 다 그대로 이식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때 막대한 자본으로 세계적인 명장과 선수들을 영입하여 자국 리그인 슈퍼리그를 아시아 제1의 빅리그로 만들고자 했던 중국이 이제는 뭘 해도 안 되는 A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한국 축구의 성공 모델로 눈을 돌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까지는 미미하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히딩크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히딩크 감독은 2020년 도쿄올림픽 예선으로 치러지는 AFC U-23 챔피언십 예선전을 준비하기 위해 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과정에 있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중국 U-23 대표팀은 태국, 멕시코, 아이슬란드와 현재 전지훈련 두 경기까지 3승 2무로 5연속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상대팀의 레벨 여하를 떠나 일단 패배를 극복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히딩크의 효과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승리보다 패배에 더 익숙했던 중국팀에게 있어 현재까지의 결과도 결과지만, 히딩크에 의한 팀 운용 및 선수단 가용 범위 확대, 팀 조직 및 결속 측면에서 나타나는 가시적 효과 등.. 경기 외적 요소들이지만 경기력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중국 내부에서는 이를 매우 고무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히딩크 지도력에 의한 이러한 분위기가 그를 보좌하는 한국 코치진들의 합류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 되는 시점에서 중국이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할 경우, 어쩌면 아시아에서 한국 다음으로 중국이 다시 한 번 '히딩크 매직'의 거센 돌풍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우리가 이러한 분위기를 한 번 경험했고, '베트남의 히딩크'라 불리는 박항서 감독에 의해 베트남이 이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히딩크와 한국 축구'라는 이러한 컨셉이 만약 중국에서도 통하게 된다면, 오히려 우리는 또 다시 '잃어버린 히딩크의 유산'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아시아 무대에서도 새롭게 닥쳐올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그저 기우일까?
어쨌거나 도전과 위기가 닥치기 전에 우리는 그동안 겪었던 과정과 소중한 기억들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잊혀진 히딩크의 유산'과 함께 'CU@K리그'라는 잊혀진 약속도 그 중 하나인듯 하다.
또한 분명한 것은 당시에는 모든 것을 개혁하고, 약속하고, 꾸준히 기억하며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바로 잊혀지는.. 이러한 현상은 비단 축구에만 국한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