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재산은 단지 한 사람의 감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홍명보 감독 유임 결정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부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도 한 번 실패했다고 무작정 감독만 교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그동안 축구협회가 보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몹시 생소하고 불편하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나가 있던 차범근 감독을 경질하고, 월드컵 예선전이 한창일 때 레바논전에서 졌다고 예선전이 끝난 것도, 탈락 위기에 몰린 것도 아닌데 조광래 감독을 단 칼에 잘라버리고 잔여 연봉도 지급하지 않으려던 그 축구협회가 과연 맞는 것일까?
혹시 드라마 개과천선의 영향 때문에 그동안의 불합리했던 기억은 깡그리 잊고 만 것일까?
그러나 이번 사안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을 보면 축협이 돌연 개과천선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단지 사람과 상황에 따라 아전인수 1 격으로 편의에 따라 논리를 맞추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은 "그냥 사람을 교체한다고 하면 '그동안 우리 축구에 희망을 주고 기쁨을 줬던 감독이 한 순간에 그냥 사라질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축구 재산인데 우리가 보호하고 기회를 더 주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홍명보 감독에 대한 유임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말 자체는 구구절절히 옳은 말이며, 개인적으로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축협의 조치는 그동안의 행태와는 아주 판이한 태도이기 때문에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홍명보 감독이 '한국축구의 재산'이라기 보다는 축협이 보기에 다루기 편한 대상이거나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서 축협의 책임을 물타기로 무마하려는 궁여지책으로 보여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홍명보 감독 한 사람만이 한국축구의 재산이 아니다.
이러한 발언을 한 허정무 부회장 역시 최초로 원정 16강을 이뤄낸 감독으로서 한국축구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라면 차범근 감독은 물론 조광래 감독도 당연히 한국축구의 재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주어진 적이 있었는가?
한국축구의 재산은 협회가 원하는 감독 한 사람을 챙기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축구협회의 개혁과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 원칙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존중하는 마인드, 한국축구 전반에 걸친 장기적 비전과 마스터플랜 수립, 그리고 체계적인 투자와 피드백 시스템 등.. 근본적인 노력에서 얻어지는 모든 결과물이야말로 한국축구의 재산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비로소 대표팀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뿌리와 근간이 되는 선수와 감독의 배출, 그리고 K리그의 발전과 팬들의 관심이 증가할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축구를 위한 진정한 화수분 2을 형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허정무 부회장이 공언한대로 이번 월드컵 실패 원인에 대한 신속한 분석과 이에 따른 명확한 책임 이행 및 향후 전반적인 개혁과 구체적인 대안이 실행될 것인지 계속 주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