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전 졸전으로 드러난 최강희호의 경기력 실종 사태
20년간 베이루트에서 승리를 하지 못한 악몽이 또다시 재연되었다.
골대를 지겹게 때리고 여러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버리고는, 추가 시간 천신만고 끝에 김치우의 세트피스 동점골로 겨우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레바논전을 통해 그동안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팬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이번 경기로 최강희 감독의 대표팀은 그동안 압박, 조직력, 스피드로 대변되던 한국팀 특유의 경기력이 갈수록 실종되고 있음을 재확인 하게 되었다.
마치 아령과 같은 형태로 공격진과 수비진은 따로 놀았고 미드필드는 좁은 터널 속에 갇힌 형국이 되어 전술도 템포도 밸런스도 모두 상실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팀은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를 할만한 간격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비진영을 모두 갖춰놓은 레바논 선수들이 미드필드에서부터 2~3명씩 압박해 들어오자 볼처리에 매우 어려워 하는 모습을 노출하며 번번히 패스미스와 레바논의 카운터 어택을 허용했다.
이러한 총체적인 멘붕상태는 단지 '손흥민, 지동원 등 어떤 선수를 선발 기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동국, 김신욱, 지동원, 손흥민이 다 나왔지만, 김치우의 세트피스 골로 겨우 비겼다.
현재 우리팀은 여전히 조직력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필드안에서 선수들 간의 호흡과 소통이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특히 수비진영의 경우 곽태휘를 제외하면, 본선이 얼마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경기 연속으로 출전한 베스트멤버가 거의 없을 정도로 무주공산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선수들간의 호흡이 잘 맞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공수 양면에서 스피디한 모습과 짜임새가 없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공격자원은 스피드를 커버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지동원, 이청용, 손흥민, 김보경, (구자철) 등의 선수들이 있지만, 윙백에 대한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스피드가 없는 현재의 좌우 윙백은 공격가담도 안정된 수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연속이며, 그나마 붙박이 주전도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오늘 경기에서도 레바논에게 뒷 공간을 열어주며 번번히 역습을 허용했다.
이렇듯 수비가 불안정하면 중앙 미드필더드들이 수비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격 또한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다.
오늘 경기에서도 우리는 수비수가 8명이나 미리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레바논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공을 잡고 있는 상대 선수에 대한 압박의 강도는 느슨했고, 수비수들은 공만 쳐다보다가 레바논 공격진 2선을 그대로 방치했으며 공간을 미리 장악하지도 못했다.
드리블 돌파, 스피드 등 1대1 개인능력에서도 레바논 2진 선수들에게 밀리며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이번 경기는 최강희 감독이 언급한대로 월드컵예선전 중에서도 분수령이 될만한 가장 중요한 일전이었다.
그런데 김치우-곽태휘-김기희-신광훈 조합은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는 새로운 조합이었다.
그리고 김남일의 파트너로 선발 투입된 한국영은 보이지도 않다가 교체되었다.
현장에서 선수들의 컨디션과 경기력 등은 감독이 가장 잘 파악하고 결정하겠지만, 매 경기마다 스쿼드가 달라지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선수들의 집중력과 마인드 측면도 각자 스스로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B조의 일본은 오늘 호주와 비김으로써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었다.
이란은 오늘 카타르에게 1대0으로 승리했다.
우리는 레바논전에서 가까스로 승점 1점을 얻어 오늘 경기가 없었던 우즈벡을 골득실 차이로 제치고 조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오늘 이와 같은 최강희호의 답답한 경기력 실종 사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직접 다투게 될 이란, 우즈벡과의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상당한 우려를 낳게했다.
지금까지의 대책 보다 훨씬 강력한 보완책이 없는 한, 본선 진출도 아직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 대표팀이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조합도, 전술도 아닌 안정된 스쿼드에 의한 조직력, 즉 선수들 간의 호흡이다.